자신의 목표를 다스리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은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최선의 방안은 자기 욕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편견을 인식하면서
사회적, 물질적 여건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목표를 겸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이보다 덜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보다 과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좌절을 자초하는 셈이다.
만약 어떤 일이 명확한 목표, 뚜렷한 결과, 자신감, 힘에 부치지 않은 난이도, 정돈된 분위기를 줄 수 있다면,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운동을 하거나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맛보는 희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습관과 사회적 관성의 압력이 워낙 크게 작용하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지,
어떤 일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밤에 일기를 적거나 하루 일과를 반성하는 버릇을 들이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과연 무엇인지를 차분히 추려낼 수 있다.
대인공포증에 걸려있는 사람이면
번잡한 도심을 함께 거닐거나 시끌벅적한 춤판이 벌어지는 곳으로 데려갔다.
창조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언제 누구와 같이 해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거기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엮어나가는 데 남달리 뛰어나다.
정말로 성숙해지려면 대화를 통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사고를 가진 상대를 만나야 한다.
그러니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긴요한 것은 결국 고독을 견디는 능력, 아니, 고독을 즐기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 못지않게,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도
우리가 가지는 경험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뛰어난 창조적 재능을 보여준 사상가와 예술가의 말을 믿어보자면,
마음에 드는 경관이야말로 영감과 창조력의 샘이다.
이렇다 할 수입도 없이 한가로움만 주어진다면
그 사람은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고 참담함에 젖는다.
일은 산만항을 누르고 집중력을 살린다.
이상적인 경우는 일의 난이도가 일을 하는 사람의 실력과 엇비슷할 때다.
여가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기란
예상보다 쉽지 않다.
"내가 일평생 단1분도 쉬지 않고 일했다는 말도 옳고,
내가 단 하루도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한 적이 없다는 말도 옳다."
여가를 즐기는 데는 특별한 재주가 필요 없고 아무나 즐길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임을 보여준다.
여가는 일보다 즐기기가 더 어렵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쓰는 요령을 모르면 삶의 질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로 사람이 저절로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은 하나같이 처음에 어느정도
집중력을 쏟아부어야 그 다음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활동을 즐기려면 그런 '시동 에너지'를 어느정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너무피곤하거나 너무 불안하거나 혹은 처음의 그런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재미는 덜하더라도 더 편하게 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족할 것이다.
바로 이 틈새를 비집고 '수동적 여가' 활동이 들어온다.
수동적 여가가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그것이 자유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편으로 쓰이는 순간부터다.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진 건강한 삶을 누리는 방법은 과연 이 길밖에 없을까?
한 사람의 삶이 알차려면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는 것처럼
한 사회의 질적 수준은 시민들이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한 사회집단의 생활방식이 생명력을 잃고, 일이 지겨운 타성으로 변질되고,
공동체의 책임감이 그 의미를 잃어갈수록 여가의 비중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오락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는
앞으로 직면하게 될 기술적, 경제적 난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내려면
본인의 선택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서 그 사람이 내리는 판단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학공부, 피아노연습, 컴퓨터프로그램 짜기, 삶의 의미에 대한 사색은 다른 사람들 속에서는 아무래도 하기 어려운 활동이다.
외부의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보다는
일 자체가 좋아서 하는 사람이 자기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은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보상이 되기에 물질적 수혜라든가 재미, 쾌감, 권력, 명예 같은 별도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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